수하갤러리가 다시 문을 연다. 2015년 이후 10여 년 만이다. 2013년 처음 문을 열 때 생각은 우리 시대 한국화단을 중심으로 주목할만한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면서 미술계 선‧후배 세대를 매개하는 문화공간이기를 표방했었다. 이번에 공간을 옮겨 새롭게 재개관하는 운영의 주된 방향도 마찬가지다. 창작하는 작가들과 애호가나 시민들을 연결하는 매개처 역할을 우선하고 있다.
요즈음 미술계 활기가 다소 떨어져 있는 분위기다. 각자의 활동들은 활발하지만 화단의 큰 움직임이나 미술계에서 주목할만한 이슈가 별로 없다. 개별 작업에서도 세간의 관심을 불러 모을 만한 과감한 도전이나 시도보다는 각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기세계를 모색하는 모양새다. 워낙 감각적인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문화소비 꺼리가 온‧오프로 즐비하면서 이따금 큰 전시가 이벤트처럼 잠시 바람을 일으키고 지나가다 보니 웬만해서는 혹하지 않는 문화풍요의 시대라서 더 그런가 보다.
크고 작은 문화공간과 갤러리들이 예술과 일상을 잇는 매개고리로 운영되고 있으나 제 색깔과 울림을 만들어내는 기획전을 적극적으로 펼치기가 만만치 않다. 미술 현장과 일상 현실 사이에서 괄목할만한 기획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할 수 있는 정도라도 감지덕지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획력을 잃지 않고 이를 실현해내기 위해 분투하는 몇몇 공간들은 그만큼 더없이 귀한 행보이고 우리 문화의 생기를 돋우는 충전제이다.
수하갤러리가 재개관 첫 기획전으로 올리는 ‘Series I’의 초대작가 27인은 광주 한국화단의 중진부터 청년세대까지를 폭넓게 망라하고 있다. 대체로 전통 수묵보다는 채묵이나 채색이 주류이면서, 필묵의 묘법이나 형상성, 이미지를 독자적 화폭으로 풀어내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운필의 기운을 색채 조화로 풀어내는 비정형 추상이나 밀도 있는 세필 진채 심상풍경, 스미고 덧 쌓이는 수성 채색안료와 모필의 묘법을 살린 사실적 묘사들을 고루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시대적 변화와 함께 꾸준하게 확장되어 온 남도 한국화단의 현재를 모아놓은 장이다.
이번 첫 기획전 다음으로 이어질 ‘Series II’의 한국화 중진 원로들의 작품까지 연결하면 남도 현대 한국화 40여 년을 압축해서 살펴보면서 다시 앞을 내다보는 새 출발이 될 것 같다. 거기에 서양화 Series도 기획 예정이라 하니 남도 현대회화를 폭넓게 망라해보면서 재출발하는 셈이 될 것이다.
공립이든 사립이든 문화공간은 그 자체로 공적 영역이 된다. 수하갤러리가 자리하고 있는 동명동은 요즘 광주의 이른바 핫플이다. 광주의 원도심 아시아문화전당권에 속한 동명동 카페거리와 푸른길공원 사이의 호젓한 주택가에서 여유롭게 예술의 향취를 나누는 문화매개 공간으로 몫을 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운영하는 분의 활동반경과 그에 따른 관점이 다른 만큼 수하갤러리만의 독특한 색깔로 매개 접점을 넓혀 나가길 기대한다.